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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7년 10월 9일 열린마당 / 3단 이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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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해민교무 조회 178회 작성일 2022-10-10 09:29본문
3단 이도관
아픈 손녀의 장애인 유모차 및 의료 장비들이 노후하여 코로나로 3년간 열리지 못하였던 뒤셀도르프 의료 박람회에 다녀왔다. 박람회장에 도착하여 장애인 유모차 부스부터 방문하였더니 마침 8년 전에 유모차를 팔았던 본사 직원이 있었다. 손녀가 이제 10살이라고 하였더니 자기가 코리언 베이비를 잘 기억하고 있다면서 기적이라며 이제는 제도가 바뀌어 본사에서는 홍보만 하고 모든 구매는 대리상을 통해 이루어지나 자기가 특별히 직접 팔겠다고 한다. 직접 구매하면 한국 대리상을 통하는 것보다 가격이 3분의 1밖에 하지 않는다. 고맙다고 하고 구매 예약을 하였다. 뒤셀도르프 니꼬 호텔 근처는 예전에는 일본 거리였는데 지금은 일본 가게들 못지않게 한국 슈퍼, 음식점 등이 번성하고 있었다. 뒤셀도르프에서 피렌체 및 로마 근교의 온천휴양지 피우지를 거쳐 처형이 살고 있는 레체로 왔다. 유럽에서는 이제 가는 곳마다 TV는 모두 삼성 아니면 LG이고 거리에는 기아차 현대차로 넘쳐난다. 조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며칠 있으니 좀 갑갑하기도 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습성상 조용한 바닷가 호텔을 하나 잡아달라고 하여 아드리아 해변에 있는 Gatto bianco 호텔에 입실하였다. 자고 나니 동이 트려고 한다.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채 아드리아해에서 동이 터 오른다. 해 뜨는 것을 보기 위해 하인들을 독려하여 대관령에 올랐던 신사임당의 감상담이 떠올랐다. 신사임당은 자녀 교육에도 엄격하였지만 멋을 아는 분이셨던 것 같다. 바다는 내 인생에 항상 가까이 있었다. 초량 집에서 마루에 나가면 배들이 붕 소리를 내며 오갔다. 초량 교당에 올라가면 더욱 전망이 좋았다. 교무님 방에 있던 달마상과 염주와 더불어 평화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매일 영종도 집에서 바다를 보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문득 아드리아 해변이 감포 해변과 같이 느껴진다. 20년 전쯤이나 되었을까 갈등과 미움으로 괴로워하던 나는 배내골 청소년 수련원에 가서 미움을 없애 달라고 심고 올리고 법신불 전에 절을 올리고 하였다. 아무리 심고를 올리고 절을 하여도 마음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분노와 미움의 싹이 없어지질 아니하였다. 감포로 차를 몰았다. 문무대왕릉 앞바다에 서서 한참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신기하게도 괴로움이 사라졌다. 돌아와서 향타원 종사님께 바다를 한참 쳐다보았더니 분노가 가라앉았다고 말씀드리니 향타원 종사님께서 “오늘은 네가 바다를 보고 괴로움을 없앴으나 바다와 네가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오온이 다 공한 것인데 바다가 어디에 있고, 나는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나와 바다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망상일 뿐이다.
아픈 손녀의 장애인 유모차 및 의료 장비들이 노후하여 코로나로 3년간 열리지 못하였던 뒤셀도르프 의료 박람회에 다녀왔다. 박람회장에 도착하여 장애인 유모차 부스부터 방문하였더니 마침 8년 전에 유모차를 팔았던 본사 직원이 있었다. 손녀가 이제 10살이라고 하였더니 자기가 코리언 베이비를 잘 기억하고 있다면서 기적이라며 이제는 제도가 바뀌어 본사에서는 홍보만 하고 모든 구매는 대리상을 통해 이루어지나 자기가 특별히 직접 팔겠다고 한다. 직접 구매하면 한국 대리상을 통하는 것보다 가격이 3분의 1밖에 하지 않는다. 고맙다고 하고 구매 예약을 하였다. 뒤셀도르프 니꼬 호텔 근처는 예전에는 일본 거리였는데 지금은 일본 가게들 못지않게 한국 슈퍼, 음식점 등이 번성하고 있었다. 뒤셀도르프에서 피렌체 및 로마 근교의 온천휴양지 피우지를 거쳐 처형이 살고 있는 레체로 왔다. 유럽에서는 이제 가는 곳마다 TV는 모두 삼성 아니면 LG이고 거리에는 기아차 현대차로 넘쳐난다. 조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며칠 있으니 좀 갑갑하기도 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습성상 조용한 바닷가 호텔을 하나 잡아달라고 하여 아드리아 해변에 있는 Gatto bianco 호텔에 입실하였다. 자고 나니 동이 트려고 한다.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채 아드리아해에서 동이 터 오른다. 해 뜨는 것을 보기 위해 하인들을 독려하여 대관령에 올랐던 신사임당의 감상담이 떠올랐다. 신사임당은 자녀 교육에도 엄격하였지만 멋을 아는 분이셨던 것 같다. 바다는 내 인생에 항상 가까이 있었다. 초량 집에서 마루에 나가면 배들이 붕 소리를 내며 오갔다. 초량 교당에 올라가면 더욱 전망이 좋았다. 교무님 방에 있던 달마상과 염주와 더불어 평화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매일 영종도 집에서 바다를 보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문득 아드리아 해변이 감포 해변과 같이 느껴진다. 20년 전쯤이나 되었을까 갈등과 미움으로 괴로워하던 나는 배내골 청소년 수련원에 가서 미움을 없애 달라고 심고 올리고 법신불 전에 절을 올리고 하였다. 아무리 심고를 올리고 절을 하여도 마음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분노와 미움의 싹이 없어지질 아니하였다. 감포로 차를 몰았다. 문무대왕릉 앞바다에 서서 한참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신기하게도 괴로움이 사라졌다. 돌아와서 향타원 종사님께 바다를 한참 쳐다보았더니 분노가 가라앉았다고 말씀드리니 향타원 종사님께서 “오늘은 네가 바다를 보고 괴로움을 없앴으나 바다와 네가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오온이 다 공한 것인데 바다가 어디에 있고, 나는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나와 바다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망상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