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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깊은 수양을 쌓은 사람”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김종대(명산 김성대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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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상덕 조회 1,046회 작성일 2014-09-11 22:22본문
영화 <명량>의 관객수가 1700만을 돌파했다. ‘천만 관객’만 해도 꿈의 기록인데 천만을 훌쩍 뛰어넘은 1700만이라는 놀라운 숫자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한 요인이었겠지만 영화가 그려낸 ‘이순신’이라는 인물, 그리고 12척의 배로 수백의 적을 물리친 ‘명량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빼놓고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영화 <명량>의 흥행 돌풍으로 영화에 대한 분석과 비평, 그리고 산업적 전망까지 무수히 많은 글들이 제출된 상태다. 그렇다면 이제는 초점을 조금 이동해 이순신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 대한 탐구로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역사인물을 꼽으라면 하면 열에 여섯 일곱은 이순신 장군을 얘기한다. 하지만 막상 존경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순신이 왜군을 물리쳤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를 얘기해달라고 하면 역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는 이순신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깊이 있게,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했던 김종대 전 재판관은 오래 전부터 이순신에 매료돼 그의 생애를 공부해왔고 그 공부의 결과를 정리한 책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펴내기도 했다. 이순신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순신 학교를 계획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기존의 책을 쉽게 풀어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라는 청소년용 책으로 펴냈다. 이순신에 대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2년 반 전인가 이순신 관련한 강연을 했는데, 강연 끝나고 한 변호사가 찾아왔어요. 자기 동생이 영화 감독인데 한 번 만나고 싶어한다고요. 김한민 감독이었죠. 그래서 일주일 후에 김한민 감독과 만났는데, 당시 이미 시나리오도 완성 단계고 제작도 많이 진척된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순신이 왜 이겼는지에 대해서 자꾸 의심이 가더랍니다. 사실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을 이긴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이해가 안 되거든요.
저도 영화를 보고, 또 역사책에서 사실 확인을 했는데도 도무지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은 거죠.
이순신이 명량해전에 대해서 『난중일기』에 남긴 기록을 보면, 전날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쳐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전이 끝난 뒤 “이번 일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이렇게만 적고 있어요. 이걸로는 승리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순신이 큰 쇠줄을 명량 앞바다에 걸어서 왜군의 배가 쇠줄에 걸려 엎어지게 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것이 전날이에요. 전투 하루 전날 도착해서 어떻게 몇 백 미터 쇠줄을 설치합니까. 쇠줄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그런데 그런 가설들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니까요. 귀신이 와서 도와줬다 할 수도 없고요.
그렇다면 명량해전에서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전투의 과정을 보면, 명량의 좁은 목에 일자진을 펼치면 12척으로도 적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명량 앞바다까지 왜군들은 순류를 타고 올테고 우리는 물흐름을 거슬러 가야하니 힘들게 피나도록 노를 저어 가야 했겠죠. 거기서 닻을 내리고 물살이 바뀔 때까지 싸우며 버티다가 물의 흐름을 바뀌어 적이 당황할 때 순류를 타고 적을 치면 가능성이 있었을 거라는 거죠. 결국 명량의 승리는 이순신 개인의 탁월한 전략과 리더십 때문이지 다른 외부적 조건은 있을 수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김한민 감독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그 뒤로는 영화 촬영도 응원해주고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했습니다.
역사학자도 아니신데 이순신에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이순신 전도사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이순신에 대해서는 군대 다닐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13년 전쯤 부산에서 지원장을 할 때, 외국인이나 자기 자식이 물어보면 이순신에 대해서 누구나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 싶어서 쉽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을 하나 냈었죠. 그런데 마침 그 때 방송국에서 이순신에 대한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고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뜨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순신 전문가라며 나에게 이순신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그때 내가 이순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더 열심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왜?’를 묻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가 되었나이다』고요.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가 되었나이다』에서는 이순신 리더십의 원천을 네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셨는데요.
경영과 결부시켜서 이순신 리더십을 분석한 책들도 많아요. 그런 책들에서 말하는 리더십을 모으면 스무 개, 서른 개는 나올 거에요. 이순신 리더십을 일일이 배우고 적용하기 보다는 리더십의 원천, 뿌리를 얘기하고 싶었죠.
이순신에게는 크게 네 가지 가치가 있었어요.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천이자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되었던 것은 사랑과 정성이에요. 사랑이란, 부하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백성에 대한 사랑, 국토에 대한 사랑이죠. 이 땅을 한 뼘도 왜적에게 내어주지 않겠다, 내 백성은 단 한 사람도 상하게 하지 않겠다, 그런 사랑이 극에 이른 것이 이순신입니다. 또 이순신의 정성은 크게 세 단계로 발현되는데, 우선 일이 있기 전에는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일이 생기면 목숨을 바칩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는 내 알 바가 아니다는 것이죠. 이순신은 아무도 임진왜란을 예상하지 않았을 때도 혼자 거북선을 만듭니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매 전투마다 목숨을 걸었고요. 그러다 죽게 되어도 할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다면 그것도 행복이다라는 자세로요. 나중에 공을 인정받아서 왕에게 어떤 상을 받을 것인가를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이렇게 지극하게 정성을 다하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명량해전은 결국 이순신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움직인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이순신 특유의 가치 두 가지가 있는데, 바름과 자력입니다. 이순신은 눈 앞에 성공이 보이더라도 바른 길이 아니면 그 성공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름이고, 자력은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룬다는 자세지요.
이순신에게서 리더십의 방법론을 찾기 보다는 그가 정립한 가치관을 먼저 배우자는 말씀이시군요.
류성룡이나 권율 같은 당대의 사람들이 이순신에 대해 평하는 말들을 보면, 용감하다, 싸움을 잘했다, 이런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깊은 수양을 쌓았다’고 해요. 군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용기가 아니라 깊은 수양을 쌓았다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죠.
이순신은 일찍이 이 가치관을 정립했어요. 그리고 이것은 한마디로 인격입니다. 내면의 가치가 그 사람의 인격을 이루고, 이 인격을 바탕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리더십이 나오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리더십이 나오는 거죠. 사람에게는 누구나 사랑하는 것에 대한 정성을 키우고 자신의 힘으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힘이 있어요. 그걸 키우고 양성하는 것이 이순신 정신인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순신은 그처럼 ‘완성형’ 인간이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에게는 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야 사람들이 인물에게 공감을 느끼는데 말이죠.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몇몇 소설들을 보면,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서 자살에 가깝게 표현을 하더라고요. 불의에 대해서 체념하고 자살을 택하는 것으로요. 그런데 이순신은 그런 인간적 고뇌를 한 단계 넘어선 사람입니다. 수양으로 단련되어 내면의 고요함을 가진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진 않았을 겁니다. 이순신은 자신을 이기고 나서 적을 이긴 것이죠. 기적은 거기에서 일어난 겁니다.
이순신에게도 인간적 고뇌가 있었을 겁니다. 수양을 하는 과정에서 고뇌가 있었겠죠. 제가 보기엔 21살부터 32살 사이, 관직에 출사하기 전의 시기에 이미 이분의 내면이 완성되지 않았나 해요. 그렇지만 이 시기의 자료는 안타깝지만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확답을 할 수는 없죠. 다만 과거 시험의 문답, 무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 나중에 젊은이들에게 준 시 같은 것들에서 그런 편린들을 찾아 추측해 볼 뿐이죠.
이순신 정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고요?
올해 부산과 서울 두 군데에서 이순신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제가 이순신 정신에 대한 강연을 이백여 차례 다녔지만 제가 만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1시간 정도 이순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강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열었습니다. 35세부터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한데, 이분들이 이순신 전도사가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순신 정신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순신 학교를 설립해서 누구나 이순신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하고 싶고요.
우리가 지금 이순신 정신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라면 어떤 것일까요?
요즘은 아이들에게 남을 돕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출세해라, 돈 잘 버는 사람이 되어라, 그렇게 자꾸 눈에 보이는 가치, 물질만 추구하는 삶을 가르치다 보니 정말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전도된 세상에서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순신 정신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청소년을 위한 책을 냈으니 더 어린 친구들,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로도 책을 한 번 내보고 싶네요(웃음).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영화 <명량>의 흥행 돌풍으로 영화에 대한 분석과 비평, 그리고 산업적 전망까지 무수히 많은 글들이 제출된 상태다. 그렇다면 이제는 초점을 조금 이동해 이순신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 대한 탐구로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역사인물을 꼽으라면 하면 열에 여섯 일곱은 이순신 장군을 얘기한다. 하지만 막상 존경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순신이 왜군을 물리쳤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를 얘기해달라고 하면 역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는 이순신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깊이 있게,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했던 김종대 전 재판관은 오래 전부터 이순신에 매료돼 그의 생애를 공부해왔고 그 공부의 결과를 정리한 책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펴내기도 했다. 이순신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순신 학교를 계획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기존의 책을 쉽게 풀어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라는 청소년용 책으로 펴냈다. 이순신에 대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2년 반 전인가 이순신 관련한 강연을 했는데, 강연 끝나고 한 변호사가 찾아왔어요. 자기 동생이 영화 감독인데 한 번 만나고 싶어한다고요. 김한민 감독이었죠. 그래서 일주일 후에 김한민 감독과 만났는데, 당시 이미 시나리오도 완성 단계고 제작도 많이 진척된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순신이 왜 이겼는지에 대해서 자꾸 의심이 가더랍니다. 사실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을 이긴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이해가 안 되거든요.
저도 영화를 보고, 또 역사책에서 사실 확인을 했는데도 도무지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은 거죠.
이순신이 명량해전에 대해서 『난중일기』에 남긴 기록을 보면, 전날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쳐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전이 끝난 뒤 “이번 일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이렇게만 적고 있어요. 이걸로는 승리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순신이 큰 쇠줄을 명량 앞바다에 걸어서 왜군의 배가 쇠줄에 걸려 엎어지게 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것이 전날이에요. 전투 하루 전날 도착해서 어떻게 몇 백 미터 쇠줄을 설치합니까. 쇠줄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그런데 그런 가설들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니까요. 귀신이 와서 도와줬다 할 수도 없고요.
그렇다면 명량해전에서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전투의 과정을 보면, 명량의 좁은 목에 일자진을 펼치면 12척으로도 적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명량 앞바다까지 왜군들은 순류를 타고 올테고 우리는 물흐름을 거슬러 가야하니 힘들게 피나도록 노를 저어 가야 했겠죠. 거기서 닻을 내리고 물살이 바뀔 때까지 싸우며 버티다가 물의 흐름을 바뀌어 적이 당황할 때 순류를 타고 적을 치면 가능성이 있었을 거라는 거죠. 결국 명량의 승리는 이순신 개인의 탁월한 전략과 리더십 때문이지 다른 외부적 조건은 있을 수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김한민 감독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그 뒤로는 영화 촬영도 응원해주고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했습니다.
역사학자도 아니신데 이순신에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이순신 전도사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이순신에 대해서는 군대 다닐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13년 전쯤 부산에서 지원장을 할 때, 외국인이나 자기 자식이 물어보면 이순신에 대해서 누구나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 싶어서 쉽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을 하나 냈었죠. 그런데 마침 그 때 방송국에서 이순신에 대한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고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뜨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순신 전문가라며 나에게 이순신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그때 내가 이순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더 열심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왜?’를 묻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가 되었나이다』고요.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가 되었나이다』에서는 이순신 리더십의 원천을 네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셨는데요.
경영과 결부시켜서 이순신 리더십을 분석한 책들도 많아요. 그런 책들에서 말하는 리더십을 모으면 스무 개, 서른 개는 나올 거에요. 이순신 리더십을 일일이 배우고 적용하기 보다는 리더십의 원천, 뿌리를 얘기하고 싶었죠.
이순신에게는 크게 네 가지 가치가 있었어요.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천이자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되었던 것은 사랑과 정성이에요. 사랑이란, 부하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백성에 대한 사랑, 국토에 대한 사랑이죠. 이 땅을 한 뼘도 왜적에게 내어주지 않겠다, 내 백성은 단 한 사람도 상하게 하지 않겠다, 그런 사랑이 극에 이른 것이 이순신입니다. 또 이순신의 정성은 크게 세 단계로 발현되는데, 우선 일이 있기 전에는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일이 생기면 목숨을 바칩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는 내 알 바가 아니다는 것이죠. 이순신은 아무도 임진왜란을 예상하지 않았을 때도 혼자 거북선을 만듭니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매 전투마다 목숨을 걸었고요. 그러다 죽게 되어도 할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다면 그것도 행복이다라는 자세로요. 나중에 공을 인정받아서 왕에게 어떤 상을 받을 것인가를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이렇게 지극하게 정성을 다하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명량해전은 결국 이순신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움직인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이순신 특유의 가치 두 가지가 있는데, 바름과 자력입니다. 이순신은 눈 앞에 성공이 보이더라도 바른 길이 아니면 그 성공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름이고, 자력은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룬다는 자세지요.
이순신에게서 리더십의 방법론을 찾기 보다는 그가 정립한 가치관을 먼저 배우자는 말씀이시군요.
류성룡이나 권율 같은 당대의 사람들이 이순신에 대해 평하는 말들을 보면, 용감하다, 싸움을 잘했다, 이런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깊은 수양을 쌓았다’고 해요. 군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용기가 아니라 깊은 수양을 쌓았다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죠.
이순신은 일찍이 이 가치관을 정립했어요. 그리고 이것은 한마디로 인격입니다. 내면의 가치가 그 사람의 인격을 이루고, 이 인격을 바탕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리더십이 나오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리더십이 나오는 거죠. 사람에게는 누구나 사랑하는 것에 대한 정성을 키우고 자신의 힘으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힘이 있어요. 그걸 키우고 양성하는 것이 이순신 정신인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순신은 그처럼 ‘완성형’ 인간이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에게는 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야 사람들이 인물에게 공감을 느끼는데 말이죠.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몇몇 소설들을 보면,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서 자살에 가깝게 표현을 하더라고요. 불의에 대해서 체념하고 자살을 택하는 것으로요. 그런데 이순신은 그런 인간적 고뇌를 한 단계 넘어선 사람입니다. 수양으로 단련되어 내면의 고요함을 가진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진 않았을 겁니다. 이순신은 자신을 이기고 나서 적을 이긴 것이죠. 기적은 거기에서 일어난 겁니다.
이순신에게도 인간적 고뇌가 있었을 겁니다. 수양을 하는 과정에서 고뇌가 있었겠죠. 제가 보기엔 21살부터 32살 사이, 관직에 출사하기 전의 시기에 이미 이분의 내면이 완성되지 않았나 해요. 그렇지만 이 시기의 자료는 안타깝지만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확답을 할 수는 없죠. 다만 과거 시험의 문답, 무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 나중에 젊은이들에게 준 시 같은 것들에서 그런 편린들을 찾아 추측해 볼 뿐이죠.
이순신 정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고요?
올해 부산과 서울 두 군데에서 이순신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제가 이순신 정신에 대한 강연을 이백여 차례 다녔지만 제가 만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1시간 정도 이순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강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열었습니다. 35세부터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한데, 이분들이 이순신 전도사가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순신 정신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순신 학교를 설립해서 누구나 이순신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하고 싶고요.
우리가 지금 이순신 정신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라면 어떤 것일까요?
요즘은 아이들에게 남을 돕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출세해라, 돈 잘 버는 사람이 되어라, 그렇게 자꾸 눈에 보이는 가치, 물질만 추구하는 삶을 가르치다 보니 정말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전도된 세상에서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순신 정신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청소년을 위한 책을 냈으니 더 어린 친구들,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로도 책을 한 번 내보고 싶네요(웃음).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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