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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玄, 장자와 소통] 도통한사람 - 지인 성인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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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신 조회 2,270회 작성일 2011-12-04 19:51

본문

지인은 無己, 신인은 無功, 성인은 無名하다



<장자>를 읽으려고 책을 펴들면 무슨 내용인지 쉽게 이해 되지 않는다. 책에 등장하는 개념들이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이 개념들에 익숙하려면 중국 신화, 또 중국 고대 및 춘추전국시대 역사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이런 배경 없이 읽으려면 무슨 소리인지 도시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끝내고 <장자>를 읽는다면 감탄사가 절로 자주 튀어 나올 것이다. <장자>라는 텍스트가 겉에서 보기 보다는 매우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으며, 또 논리적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장자> 읽기가 쉬워질 뿐 아니라 그 깊이도 훤히 꿰뚫을 수 있다.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장자> 해설서가 텍스트의 이런 체계성과 논리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장자사상을 설파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자> 텍스트의 이런 체계성과 논리성은 첫 편인 소요유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장자는 소요유 전반부를 도(道)에 대해 할애하면서 도를 통한 사람, 즉 도통(道通)한 사람을 지인(至人), 신인(神人), 성인(聖人)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지인은 무기(無己)하며, 신인은 무공(無功)하고, 성인은 무명(無名)하다고 말하는데 무기란 자아가 없음을, 무공은 의식적 행동이 없음을, 무명은 신분상의 명칭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 모두는 불가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이 없음을 뜻한다. 또 소요유 후반부에서는 지인, 신인, 성인의 예를 각각 들고 있는데 허유(許由)를 성인의 예로, 고야산(姑射山)의 신비로운 사람을 신인의 예로,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한 상인을 지인의 예로 각각 들고 있다.
허유는 세상을 피해 기산(箕山)에 숨어 살던 현인인데 요(堯)는 그의 명성을 듣고 임금 자리를 그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요는 허유를 만나 “해와 달이 있는데도 횃불이 계속 타고 있으니 횃불이 빛을 발하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하며 허유를 해와 달에, 자신을 횃불에 비유하면서 횃불인 자신보다 해와 달인 허유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현(賢)하다는 사실을 허유에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또 “하늘에서 때 맞추어 비를 내리는데도 여전히 물을 길어다 밭을 적시고 있으니 그 물은 소용없는 것이지요” 하며 허유를 하늘의 비에, 자신을 길어다 쓴 물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덕(德)의 부족함을 허유에게 강조하고자 한다.
이에 허유는 “이미 당신(堯)이 천하를 잘 다스리고 있는데 내가 당신을 대신한다면 나는 이름이나 얻자는 것이 아닐까요?” 하며 임금 자리 제의를 거절한다. 여기서 거절 방식은 정중한지 모르지만 거절 내용은 매우 단호하다. 허유에게 임금이라는 호칭은 실질의 껍데기일 뿐 실질 그 자체가 아니었기에 이렇게 단호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 뿐만 아니라 임금 자리 제의를 들은 뒤에는 귀도 더렵혀졌다고 해서 냇가에 내려가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그래서 순(舜)으로 임금 자리가 이양되어 중국의 요순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이런 허유의 태도에서 성인(聖人)이 무명(無名)하다는 의미는 그대로 드러난다. 즉 성인은 이름을 얻자고, 또 이름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피하려는 존재이다. 이처럼 ‘성인’ 허유는 오늘날의 위정자(爲政者)와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보인다.
견오(肩吾)라는 사람은 신비로운 사람에 대해 들었던 허황된 이야기를 자신의 선생인 연숙(連叔)에게 다음과 같이 전한다. 머나 먼 고야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피부는 눈같이 희고 깨끗해서 소녀처럼 아름답게 생겼으며, 오곡을 먹지 않고 그 대신 바람이나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선 비룡(飛龍)을 몰아 사해(四海) 밖의 끝없는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한다. 게다가 그 신비로운 사람은 정신을 집중만 하면 세상 만물이 병들지 않으며, 그 해 농사까지 풍년 들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신인을 만나 세상 만물을 병들지 않게 하고, 풍년이 들게끔 부탁하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말한다.
이에 연숙은 사람의 몸에만 장님·귀머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장님·귀머거리가 있다면서 지금의 견오가 마음의 장님과 귀머거리가 되었다고 꾸짖는다. 세상 사람들은 신비로운 사람이 세상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겠지만 무엇 때문에 신비로운 사람이 보잘 것 없는 천하를 애써 자신의 일거리로 만들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또 신비로운 사람은 만물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으며, 홍수가 나 물이 하늘에 닿아도 빠져 죽지 않으며, 큰 가뭄으로 금석·암석이 녹아 흘러 대지나 산자락을 태워도 뜨거운 줄 모르고,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와 겨같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요순(堯舜) 같은 성인을 만들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세상을 자신의 일거리로 삼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연숙이 신비로운 사람에 대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인은 무공(無功)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요는 천하 만민을 잘 다스려 세상을 안정시킨 뒤 고야산의 신인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그만 얼이 빠져 자신이 다스리는 천하를 잊고 말았다. 요 임금이 왜 이렇게 얼이 빠졌을까? 아마도 신인이 살아가는 것을 직접 보았더니 자신의 유공(有功)이 신인의 무공(無功)보다 결코 나을 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우리도 젊었을 때는 무언가 공을 이루어보겠다고 어떤 일에 집착하곤 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짓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고는 몹시 후회했던 경우가 종종 있다. 후회할 일을 진작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인 셈이다. 만약 그럴 수만 있었더라면 벌써 성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지인이 무기(無己)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장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소개한다. 솜 빠는 일을 가업으로 이어온 송나라 사람이 겨울에 손발 트지 않는 약을 만들어 그 약을 손에 바르고 솜 빠는 일을 했다. 이 사실을 안 상인이 많은 돈을 주고 손 트지 않는 약의 비법을 사려하자 그만 그 비법을 팔았다. 약 처방을 얻은 상인은 오(吳)나라 왕을 찾아갔다. 그 때 마침 월(越)나라가 오나라를 쳐들어오자 오 왕은 그를 장수로 삼아 겨울에 수전(水戰)을 벌였는데 손 트지 않은 약 때문에 월나라를 크게 무찌를 수 있었다. 오 왕은 그에게 땅을 떼어 주어서 영주로 만들었다. 손 트지 않게 하는 기술은 같았지만 어떤 사람은 영주가 되고, 어떤 사람은 헌 솜을 세탁하는 일을 면하지 못했는데 이는 그 약을 사용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생겨났을까? 한마디로 송나라 상인은 무기(無己)하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애초 약을 발명했던 사람은 무기하지 않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송나라 상인은 빈 마음(虛心)으로 그 약을 대했기에 다양한 약의 용도를 볼 수 있었던 반면 약을 발명했던 사람은 고착된 마음(成心)으로 그 약을 대했기에 손 트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밖에 보지 못했다. 문제는 약 뿐 만이 아니다. 우리들은 상대방 마음을 지레 짐작하고 마음을 졸이거나 상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가? 모두가 부질없는 마음 씀씀이인데도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를 못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고착된 마음, 즉 아상(我相)이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에 생겨난다. 그래서 장자는 허심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나를 버림, 즉 무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