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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오욕에 빠진 우리들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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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636회 작성일 2011-01-07 13:33

본문

최근에 책을 읽다가 재미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반야심경을 풀이한 책이었는데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고・집・멸・도도 없고,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나니 이로써 얻은 바가 없는 고로)...” 부분에서 ‘苦’의 재미난 해석이었습니다. 불경의 비유경(譬喩經) 속에 나와 있는 흑백이서(黑白二鼠)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대문호인 톨스토이조차 감동했다고 합니다.

옛날 어느 곳에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이 나그네는 넓은 벌판을 지나다가 미친 코끼리와 갑자기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놀라서 달아나려 했지만 넓은 벌판이기에 숨을 마땅한 곳을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들판 한 복판에 오래된 우물 하나가 있었고, 그 우물 안에는 한 줄기 등나무 덩굴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하늘이 주신 것이라 기뻐하고서 급히 그 등나무 덩굴을 타고 우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코끼리는 긴 상아를 무섭게 내밀었지만 우물을 들여다 볼 뿐 더 이상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있는데 무서운 큰 뱀이 우물 밑바닥에서 입을 척 벌리고 나그네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닙니까? 놀라서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금방 물듯이 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목숨을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한 가닥 등나무 덩굴뿐인 데 그 덩굴마저 검은 색과 흰 색 쥐 한 마리 씩이 뿌리 앞 쪽을 갈근갈근 이빨로 갉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떨고 있는데 그 때 마침 덩굴 뿌리에 붙어 있는 꿀벌 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씩 다섯 방울이나 그의 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꿀맛이 기막히게 맛있었던 탓인지 나그네는 그 때부터 벌써 눈 앞에 닥쳐온 무서움과 위험을 까맣게 잊고 그저 꿀물을 받아먹는 데만 마음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생이고, 또 죽으면 훌훌 털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인데도 그 안에서 욕심을 내면서까지 조금 더 달콤하게 살겠다고 하는 우리네 인생을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하다니 톨스토이도 감동 할 만합니다.
이 이야기가 왜 감동적인지 이 이야기에서 동원된 비유와 은유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지요. 먼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무작정 벌판을 헤매는 나그네는 바로 우리들일 것입니다. 여기서 벌판이란 태어나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터전이겠지요. 그 삶의 터전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헤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면 삶의 의미를 깨우친 훌륭한 선진님들은 넓고 넓은 벌판 어느 곳에 떨어뜨려도 이 나그네처럼 방황하지 않고 목적하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마리 미친 코끼리는 무상(無常)의 풍파일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온갖 풍파를 겪게 되는데 그 풍파를 미친 코끼리에 비유한 듯합니다. 그래서 풍파를 많이 겪은 사람은 미친 코끼리를 벌판에서 더 많이 만난 셈이고, 풍파를 적게 겪은 사람은 미친 코끼리를 적게 만남 셈이지요. 그리고 그 풍파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든 풍파였다면 그것은 미친 코끼리가 큰 몸짓을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또 우물이란 생사의 깊은 못에 해당합니다. 지상은 삶(生)을, 지하는 죽음(死)을 의미하지만 우물이란 지하를 파서 만든 것이기에 지하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상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물이란, 아니 우물과 같은 우리들의 은신처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그런 곳이기에 결코 죽음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들은 생사의 깊은 못에 걸려 있는 그런 가련한 존재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등 덩굴은 우리들 생명선에 해당합니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우리들 생명을 유지시키는 존재가 바로 등 넝쿨인 셈이지요. 그 생명선이 끊어지면 우리들은 곧바로 죽음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물 바닥의 큰 뱀이란 죽음의 그림자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즉 죽음의 공포를 더욱 실감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등장시킨 것이겠지요.
또 네 마리 독사는 우리들 육체를 구성하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원소일 것입니다. 지・수・화・풍의 변화에 따라 우리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검은 쥐와 흰 쥐 한 마리 씩은 밤과 낮에 해당할 것입니다. 밤과 낮이 번갈아 찾아오면서 우리들 삶은 생명에서 죽음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즉 셀 수 없는 밤과 낮의 교환에 따라 언젠가는 우리들도 죽음의 길에 들어설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 가슴을 찡하고 파고드는 정말로 중요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바로 우리들 오욕(五欲)을 가리키는 다섯 방울의 벌꿀입니다. 왜 다섯 방울의 꿀을 등장시켰는가 했더니 바로 다섯 가지 욕망과 비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욕망이란 정말로 달콤하지요. 재산이 많으면 하고 싶은 것도 다할 수 있고... 그러니까 사람들은 욕심을 한없이 부리게 되지요. 그렇지만 쥐 두 마리가 우물에 걸려 있는 자신의 생명선을 갉아먹고 있는 것을 알면 욕망을 자제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오욕의 꿀이 삶의 전부인양 집착하면 삶의 참 된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지요. 여기서 고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물론 욕망이 고통의 근원이긴 하지만 무조건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은 멋진 인생, 즉 환락(歡樂)의 근원도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애착하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 사로잡히는 마음입니다. 즉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욕망, 즉 오욕 그 자체가 고뇌의 원인이 아니고, 식욕이라든가, 색욕이라든가, 수면욕이라든가, 재산욕이라든가, 명예욕이라든가 하는 것만을 환락의 근본인 줄 망신하여 이것에 집착하는 마음이 고통의 원인일 것입니다.
이제 이 교묘한 인생의 비유를 보면서 톨스토이가 아니더라도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무상의 공포에 소름이 오싹 끼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은 도(道)를 찾는 인생의 나그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